즐겨찾기등록 시작페이지
 
 
설교 게시판
방명록
자유 게시판
찬양게시판
중보기도실
은혜나눔
자료실
인터넷방송
5월의 도서
4월의 도서
3월의 도서
2월의 도서
청년회 특별기도회
9월4일에 천마산 기도원 ...
청년회 여름 M.T.
여름성경학교 7월21일-22...
 
 
 
자료실
정규홍
2010/10/05
오리겐의 동방신학9(강민철)
463

10. 오리겐 이후의 동방신학


강민철

   

  서방신학의 중심에 어거스틴이 있다면 동방신학의 중심에는 오리겐이 자리잡고 있다. 로마카톨릭이 기독교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거스틴을 기억하고 오리겐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초기 기독교에 오리겐이 끼친 신학적 공헌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동방신학에 남긴 오리겐의 흔적은 오리겐이 죽은 후에도 결코 지워지지 않았는데, 그의 영향력은 3세기의 동방신학을 지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4세기의 아리우스 논쟁에까지 이를 정도로 대단하였다. 특히 3세기의 동방신학은 오리겐을 반대하든지 오리겐을 추종하든지 어찌되었든 오리겐으로 말미암아 신학이 발전하였던 것이다. 오리겐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였던 신학자로는 사모사타의 바울과 올림푸스의 메토디우스가 대표적이고, 오리겐을 추종하고 계승하였던 오리겐 주의자로는 네오가리사랴의 그레고리,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안디옥의 루키안 등이 대표적이다.

  먼저 사모사타의 바울의 신학을 살펴보면, 그는 당시에 유행하던 오리겐 주의와는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던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특히 그의 삼위일체론은 독특했는데, 군주신론적 경향과 양자설적인 흐름을 혼합시켜서, 역동적 군주신론이라 부르는 이론을 주장하였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유일신론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감독으로 있었던 안디옥은 팔미라 왕국의 한 지방이었는데 이 지역은 유태인들의 영향력이 컸고 유일신적인 종교의 색체를 띠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양태론적 군주신론자들의 경우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구별을 희생하면서까지 유일신론을 주장하였지만 바울은 그들과 다르게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을 강하게 함으로써 유일신론을 보전하였다. 즉, 아들은 하나님이 아니고 말씀도 지혜도 아니며 그의 존재는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성령에 의해서 마리아의 태속에 잉태된 후로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즉, 예수를 순수한 인간으로 바라보았는데, 그는 예수 안에 말씀 혹은 지혜가 단지 거주한다고 주장하면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였으며 예수와 말씀의 연합은 단순히 도덕적인 연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일본질(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사용한 용어와는 다름)이라는 개념을 들어서 말씀과 아버지가 동일하며 말씀이 아버지의 본체 혹은 위격으로 존재함을 부정하였고 예수의 인성과 참으로 연합하였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결국 바울은 안디옥 회의에서 수많은 오리겐파 학자들에 의해서 정죄되었으며 마침내 안디옥 감독의 자리에서 퇴위를 당하고 만다.

  오리겐을 반대한 또 다른 신학자로는 올림푸스의 메토디우스가 있는데, 그는 한 때 오리겐을 찬양하고 따르기도 하였지만 훗날 오리겐의 반대적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는 특히 오리겐이 주장했던 4가지 신학(이 세계의 영원성, 영혼의 선재, 영적인 종말론, 우의적 해석)에 대해서 반대하였다. 그는 멜리토, 파피아스, 이레니우스 등에서 보았던 신학적 전통에 따라 구약성경의 유형론적 해석을 주장하였고, 천년설적인 종말론과 구원역사의 총괄갱신 사상을 따랐다. 특히 메토디우스는 오리겐의 세계의 영원성 이론을 반박하였는데, 그는 완전한 존재는 온전히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공리를 적용하면서 하나님의 속성은 피조물에 의존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즉, 창조자의 개념은 피조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창조 세계의 영원성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메토디우스는 오리겐을 반대하면서도 오리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오리겐의 우의적 해석을 비판하면서도 우의적 해석과 별로 다를 바 없는 해석방법을 따랐고, 오리겐의 합리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이성의 활용을 통해 신학을 전개해 나갔으며,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는 오리겐과 비슷한 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한편, 오리겐이 죽은 이후 오리겐의 신학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얽힌 문제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오리겐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서 아들의 영원성과 아버지에게 종속됨을 동시에 주장하였는데, 소위 ‘우파 오리겐 주의’는 오리겐의 삼위일체 사상 중에 아들의 영원성만을 받아들였고 ‘좌파 오리겐 주의’는 아버지에게 종속됨만을 강조하였다. 그렇지만 오리겐의 삼위일체 사상은 그의 방대한 신학 활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고려해 볼 때 오리겐 주의자들은 오리겐 신학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것임을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네오가이사랴의 그레고리는 우파 오리겐 주의자였는데 그는 이교도 가문에서 태어났고, 훗날 오리겐 밑에서 신앙을 배우면서 개종하였다. 그는 기적의 사람이라고 종종 불리는데 그의 전도 활동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그레고리의 신학은 특별히 니싸의 그레고리(?)가 쓴 신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이 신조에서 그레고리는 아들의 영원한 신성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반면에 삼위를 구별시키는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에 오리겐의 종속론적인 면을 강조하는 후계자들로는 대표적으로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와 안디옥의 루키안이 있다. 이들 좌파 오리겐 주의자들은 대부분 당시에 유행했던 삼위간의 위격의 구별을 무시해 버린 사벨리우스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종속론이 아버지와 아들을 분명하게 구별해 주는 쉬운 방편으로 보았고 이로써 어떠한 양태론이라도 분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는 과격한 사벨리우스주의의 위협을 느끼고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을 강조한 나머지 아들이 피조물이라고까지 말하였다. 그는 아들이 계시지 않은 때가 있었고, 아버지와는 다른 본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구별은 마치 농부와 포도나무의 차이와 같다고 설명하였다. 서방 교회의 입장에서 디오니시우스의 이러한 주장은 정죄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동방과 서방의 상이한 언어 사용 때문에 야기된 문제이기도 했다. 서방에서는 터툴리안 시대 이후로 “본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삼위의 통일성을 나타내었고, “위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삼위를 구별하였는데, 동방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위격”이라는 뜻이 얼굴 혹은 가면이라는 뜻도 있어서 양태론적 경향이 짙게 보임을 지적했다. 반면에 동방의 표현은 가변적이었는데, “본질”과 “본체”로써 삼위의 통일성과 구별성을 나타내었지만, 이 두 용어는 개별적 존재에 적용되기도 했고 공통된 속성을 지니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로마의 디오니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가 3개의 “본체”를 주장한 것에 대해서 구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이체(三位異體)를 말한 것처럼 이해하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디옥의 루키안에 대해서 살펴보면, 그는 4세기 신학의 이슈가 되었던 아리우스의 스승이었다. 그도 오리겐 주의자였지만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처럼 우의적 해석을 반대하고 역사적이면서 문법적인 성서해석 방법을 주장하였다. 루키안의 이 같은 해석방법은 후일에 안디옥 학파의 특징이 되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까지도 이단들에 대응해서 표현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루키안의 해석방법을 따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사상사에서는 루키안의 삼위일체 사상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구별을 강조했으며 특히 아들의 신성을 분명치 않게 설명함으로써 그가 죽고 나서 아리우스 논쟁이 동방신학 전체를 흔들어 놓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대로 3세기의 동방신학은 오리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폭넓은 시야로 많은 사상들을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오리겐의 방대한 신학은 스승의 뜻을 다 깨닫지 못한 제자들에 의해서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신학자로 말미암아 초기 기독교의 신학은 논쟁과 분열을 통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어거스틴과 칼뱅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사상사에서 오리겐과 같은 한 사람의 신학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생각해 볼 문제


1. 오리겐의 우의적 해석은 서방신학의 유형론적 해석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2. 오리겐의 삼위일체 신학은 후대에 이르러 두 부류로 갈라지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아들의 영원성과 아버지에게 종속되는 개념이 서로 상충되기 때문인가? 오리겐은 어떻게 이 두 가지 개념을 동시에 주장할 수 있었는가?

3. 삼위 하나님의 통일성과 구별성을 서방신학처럼 본질과 위격으로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동방신학처럼 본질과 본체의 가변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더 낳은 설명일까?

 아리우스 논쟁과 니케아회의10(강정민)
 3세기의 서방신학8(김철권)
 
 
저희 교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에 속한 교회입니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내2동 503-4번지  TEL) 475-3358